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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우동이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괴정시장 포장마차에

야식을 먹으러 자주 갔다.

 

당연히 나는 우동이었다.

 

국수의 면발은 우동 면발을 이길 수 없었다.

우동 면발 위에 얹어지는 고소하고 바삭한 고명은

국물 안에서 완전히 해체되면서 보송보송해졌다.

이 반전은 탄력적인 면발을 감싸 안으며

시너지 효과를 드높였다.

게다가 간장을 베이스로 한 달콤한 짠맛은

맛의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멸치 육수의 비릿함보다 우위에 있기 충분했다.

 

누가 뭐래도 우동이었다.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느꼈을 때가,

그 증후를 보였을 때가 바로

우동보다 국수를 찾기 시작했을 때다.

 

지금 나는

우동보다 국수다.

 

비릿하지만 멸치 육수의 충실하고 진한 맛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온기를 전해준다.

씹을 때마다 쫀득쫀득한 재미는 없지만

후루룩 목 넘김이 좋은 면발은

늙어가는 내 위장에 부담감을 줄여준다.

술과 스트레스로 어느새 중년이 된 내 위장은

묵직한 우동의 중량을 이기지 못한다.

다채로운 과자 고명이 올라가지 않고

기껏 대접받아야

계란 지단이 올라가는 게 전부지만

인공적이지 않은 그 자연스러움이 더 친근하다.

 

30대의 정중앙, 서른 다섯.

그것도 이제 석 달 남았다.

 

나도 늙고 내 위장도 늙어

짧고 굵게라고 외치는 배짱 따윈 없다.

 

그저 마음속으로 가늘고 길게 

소소한 행복을 찾아 야금야금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