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홍차왕자에 가는 걸 좋아했다.
홍차왕자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 가야 있었다.
학교도 학원도 어떤 접점도 없었는데
언니는 버스를 타고 홍차왕자에 갔다.
그리고 꼭 가기 전 팬시점에 들러
색색의 볼펜, 형광펜, 스티커 등을 샀다.
홍차왕자는 작은 커피숍이었다.
갈색꼬마전구로 유리창을 장식해
온 가게가 홍차 빛깔이었다.
곳곳의 장식장에는
유리로 된 어린왕자가 크기별로 진열돼 있었다.
홍차왕자는
홍차와 어린왕자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언니는 반짝이는 갈색조명 아래에서
조용히 다이어리를 정리했다.
새로 산 볼펜의 색깔에 감탄하면서
미뤄둔 다이어리에 스티커로 꾸몄다.
나는 홍차왕자에 가는 걸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보다 포켓볼을 친다든지,
노래방에 간다든지,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엄마아빠의 똑같은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언니와 나는 그렇게 너무 달랐다.
당연히 인간이니 다르지 않겠나 싶지만
그 ‘다름’만큼 언니와 나는 많이 싸웠다.
나와는 정 반대편 별에 살고 있는 언니를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는 아마 첫애를 낳았을 때다.
양쪽 집안의 첫 번째 아기.
나의 큰딸은 그랬다.
상상하는 것 이상의 사랑과 관심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끔찍한 부담감이었다.
엄마 딱지에 잉크도 안 마른 나에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에게
그 사랑과 관심은 내 숨통을 막히게 할 뿐이었다.
‘처음’이라는 이유로 항상 새 옷을 입고
예쁨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언니가 많이도 미웠다.
그런데 그런 언니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겠구나
그 무게가 언니를 짓눌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활발할 수 있는 게
덜 받는 듯한 느낌의 사랑과 관심 때문이지 않을까.
그 결핍 덕분에 더 악착같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요즘도 언니는 조용한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고 SNS에 사진을 찍어 기록한다.
홍차왕자에 들어설 때의 그 신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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