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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회의가 있다.

그 회의를 위해서 넉넉잡아 3일 밤을 꼬박 새운다.

그래서 그 날이 되면

신랑이 연차를 쓰고 집에서 애들을 케어한다.

 

회의 전날 딸아이가 잠들기 전에 아빠한테 당부했다.

 

아빠 저녁은 꼭 같이 먹어요.

저녁 먹기 전에 꼭 데리러 와요.”

 

결혼하고 7년 동안 주말부부로 지냈다.

두 번의 출산과 육아휴직을 제외한

4년을 워킹맘으로 정신없이 살았다.

 

주위에서 쉬이 말한다.

나는 못해요. 대단하세요.”

 

나는 절대 대단하지 않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답안지는 늘 하나였다.

그래서 그 절박함이 나를 버티게 만들었을 뿐이다.

 

큰딸의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오고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의지로 이사를 했다.

강력한 내 의지는 신념이 되었고

다행히 회사에서 30분 거리의 집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행운 덕분에

두 딸이 다른 어린이집을 다니게 됐다.

 

나는 국공립 어린이집의 호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 딸들이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어린이집에 있고 하원이 늦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딸이 아빠한테 말했다.

 

아빠 저녁은 꼭 같이 먹어요.

저녁 먹기 전에 꼭 데리러 와요.”

 

큰딸은 절대 본인이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선생님들이 이모들이 삼촌들이 가족들이

엄마가 힘들다는 걸 말하고

시근이 멀쩡한 큰딸이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말하지 않는다.

 

엄마는 힘든 사람이니까.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

 

그런데 또 여전히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냥 또 잘 견디는 거.

 

눈물 콧물을 훔치며 큰 딸에게 편지를 썼고

다음날 회의를 갔으며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온 가족이 저녁을 먹었다.

 

그래, 밥심으로 우리 살자.

 

 

 

 

 

 

PS: 기쁜 소식, 주말 부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