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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19]곶감(김민정)

2017. 3. 5. 22:49

노네임포럼 T: TOPIC/김민정

 

 

곶감

 

남자와 여자는 신촌의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이 골목을 지나간 적 있어요. 헤어진 남자친구와 술을 마시고, 어쩌다 모텔에 가게 됐는데 그게 이 근처였거든요.

-헤어진 남자친구랑 잤다고요?

-. 그런데 정말 최악의 섹스였어요.

-어떤 부분이요?

-말로는 여전히 날 사랑한다,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몸으로 하는 말은 전혀 다르더라고요. 부드럽고 상냥하던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 새벽에 일어나서 조금 울곤, 혼자서 모텔 방을 나왔죠. 초가을이라 그런지 공기가 선선하더라고요. 혼자서 길을 걸으며 잠깐 산책을 하는데, 그냥 왠지 체념하는 마음이 들었죠. 그날 깨끗이 마음을 정리했던 것 같아요. , 진짜 사랑하면 깨끗이 보내주는게 맞잖아요?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여자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헤어진 여자친구랑 잤어요?

-하하, 잔건 아니고. 작년에 헤어진 여자친구를 못 잊고 다시 만나게 됐는데, 제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거죠. 그 친구는 이미 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해버려서, 마치 뭐랄까. 다시 만나는 내내, 연기를 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사랑은 찾을 수 없었고. 그런데 뭐, 그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니까요. 그냥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걸 어쩌겠어요.

-그렇죠, 시간.

-그 친구가 편지 쓰는 걸 좋아했거든요. 집에 와서 그간 받았던 편지를 읽어보는데,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이 편지에 적힌, 그 여름날의 그 사람이구나. 아쉽지만 더 이상 만날 수 없겠구나, 저 역시 체념하게 됐죠.

-슬픈 얘기네요.

-헤어지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나 제가 그 친구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참 예뻤거든요.

-미인이었나봐요.

-물론 미인이었기도 했고, 저를 사랑하는 방식이 참 예뻤어요. 저는 지금도 그런 방식으론 연애 못할 것 같아요. 자신을 다 버릴 것처럼 저를 사랑했거든요. 전 기억력도 별로 안 좋은데, 그 시절의 그 친구는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더라고요. 앞으로 그 친구가 나이를 먹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늙어가더라도, 그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은 제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좀 이상한 말이죠?

-아니요, 이해해요. 오늘 즐거웠어요. 저는 집이 이쪽 방향이라서.

-, 저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둘은 신촌 교차로에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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