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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14]밤(김민정)

2016. 12. 5. 01:08

노네임포럼 T: TOPIC/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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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날도 나는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았다. 30대 중반의 직장인 여성에게 신나는 일은 그리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남자친구도 없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안정적인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보는 나에게 일상은 항상 비슷하게 굴러간다. 어쩔 땐 좋고 어쩔 땐 조금 지루하지만, 뭐 그럭저럭 만족하고 산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니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잠시 의식을 잃고 잠에 빠져든 밤 사이, 나도 모르게 재밌는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까 기대하는 심리는 아침마다 증폭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급히 핸드폰을 부여잡는다. 이리저리 버튼을 누르며 재밌는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아이처럼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래. 마치 크리스마스날 아침, 산타할아버지가 엄청난 선물을 가져다 놓은 건 아닐까 두근대는 아이의 마음처럼, 그렇게 밤새 작은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하며 설레는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문자 메시지함을 열어보았다. 문자는 마치 조각난 편지와 같다. 편지를 쓰던 과거의 사람들은 마음의 파편을 정리하고 또 정리해 하나의 문단으로 완성했지만, 2016년을 사는 우리는 그 파편을 참지 못하고 즉시 던져버린다. 그 장단점은 너무나 선명하다. 좀 더 솔직하다는 것이 장점, 그리고 너무 빠르게 가공한 만큼 쉽사리 깨져버린다는 것이 단점이다. 읽지 않은 문자메시지는 총 42개였다. 나는 42개의 즐거움 중 32개를 먼저 꺼내보았다. 32개는 대학 친구들과 만든 단체 대화방의 것이다. 심심하다, 뭐하냐, 오늘 아이가 유치원에서 공연을 했다, 귀엽다, 점심으로 새로 생긴 카레집에 왔다……. 모두들 나처럼 심심하고 무료한 것일까, 대화의 내용은 마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쓴 듯 핵심이 없다. 대충 흩어보다 말았다. 나머지 10개는 오랜 친구에게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이지, 단박에 나의 흥미를 사로잡았다. 일단 시간부터 수상했다. 메시지를 보낸 시간은 AM 1:32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는 밤이라고도 새벽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평균적으로 AM1:00쯤 잠이 드니 이 시간은 나에게 밤이다. 하지만 그녀는 대개 PM10:00에 잠이 든다. 나에겐 밤이지만, 그녀에겐 새벽인 시간이다. 아마도 그녀는 이불 속에서 오래 뒤척이며 잠 못 이루다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녀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므로 메시지의 내용을 모두 공개할 순 없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남편이,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이새끼가, 바람을 피웠다고 했다. 주변인들도 모두 알고 있었는데 자기만 몰랐다며, 어미마다 ㅋㅋ을 붙여 완성한 메시지가 여러 개였다. 처음에는 그 ㅋㅋ이라는 모음이 주는 느낌 때문에 그녀가 생각보다 문제를 쿨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ㅋㅋ가 그녀의 불안함을 표현하는 것 같아 내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그녀는 마지막 메시지에 오늘 잠시 우리 집에 들르겠다고 했다. 그때 자세히 이야기하겠다면서.

나는 잡곡밥을 밥공기에 반만 덜고, 지난 밤 가게에서 사다놓은 된장국과 반찬으로 식탁을 채우면서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보았다. 하지만 지난 오랜 시간 싱글로 살아온 미혼 여성인 나에겐 그녀의 마음이 쉽게 이해될 리 없었다. 살다가 바람을 필 수도 있다. 그런 감정의 변화는 상대방 뿐 아니라 나에게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바람을 피웠다면 역시나 쿨하게 말하면 된다. 헤어지자고. 너 같은 새끼 필요 없다고. 며칠 좀 울고 술 좀 마시고, 클럽을 가거나 소개팅을 해서 다시 애인을 만들면 될 일이다. 하지만 대체 결혼의 영역이란 어떤 것일까.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난도질 한 듯 잔인한 죄를 지었음에도,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마주보며 일상을 나아가야 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정말 일종의 고문 같은 것이 아닐까. 마음 한켠이 답답해졌다. 그녀의 대한 연민보다도, 이것은 어찌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미스테리, 그것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는 환경에 대한 답답함 같은 것이었다. 입에 넣은 밥을 꼭꼭 씹어 삼키며 나는 이리저리 고민에 빠졌지만 끝내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심 기대를 했다. 친구가 그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들고 오기를.

30분 뒤, 친구가 문을 똑똑 두드리고 나의 집으로 들어왔다. 여느 때처럼 해맑게 웃으며, 날이 많이 풀렸어, 주말인데 집에만 있지 말고 운동을 좀 하지 그래-하면서. 사실, 그녀를 만난 뒤 나는 큰 실망감에 사로잡혔다. 친구는 아무런 답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답을 갖지 않고 찾지 않고 앞으로도 영원히 찾으려하지 않는 것. 오히려 그것이 그녀의 답인 듯 보였다. 커피를 홀짝이던 친구는 이리저리 내 방을 둘러보다, 새로 건 그림이 예쁘다며, 이 옷은 어디에서 산거냐며, 역시나 언제나처럼 나의 집에 놀러왔을 때와 비슷하게 연기했다. 그리고는 마치 어제 SNS에서 읽은 황당한 이슈를 늘어놓듯, 자신의 남편이 바람을 폈는데 그게 아마도 자신이 알고 있는 여자인 것 같다며, 담담한 표정으로 그 말을 했다. 그게 나를 더욱 숨막히게 만들었다. 마치 어떤 문제를 던져놓고, 미안. 사실 그 문제가 너무 쉬웠다. 좀 더 어려운 걸로 줘야겠어 하는 상황인 것만 같아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도망치고만 싶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가야겠다며, 서둘러 짐을 챙기곤 자신의 집으로 떠났다.

그날 밤, 그래 그날 밤에 나는 꿈을 꾸었다. 친구는 분명 내 방을 떠났는데, 여전히 내 방 한 편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거기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작은 아기였다. 친구가 아기를 낳았다고 했다. 있잖아, 사실은 아이가 있었어. 아이를 낳으니 그 사람의 마음이 돌아왔어. 너무 귀엽지? 어때, 한 번 안아볼래?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아이를 건넸다. 이제 갓 6개월을 넘긴 듯 보이는 아이는 나를 보며 꺄르르 웃었다. 아이의 손과 발은 마치 모형처럼 작디 작았다. 나는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손을 내밀며 휘저으며 한사코 안기를 거부했다. 나는 왠지 그 아이를 부서트릴 것만 같았다. 하나의 생명처럼 여겨지지가 않았고, 그런 나 자신이 두렵게 느껴졌다. 그 두려움이 어찌나 큰지, 나는 그 두려움을 감추느라 그녀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자신의 아이를 안아주지 않는 것이 못내 섭섭하다고 했다. 그 큰 눈에서 곧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받아들었다.

6개월짜리 아이의 피부는 정말이지 방금 딴 복숭아의 보드라운 껍질처럼 보드라웠다. 나는 그 촉감이 좋아 자꾸 매만졌다. 매만지고, 매만지고, 매만지고, 매만지고. 그런데 아이의 피부는 쉽게 닳았다. 보드라웠던 피부는 내 손에 닳고 닳아 미끈덩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미끄러워진 아이를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는 쨍-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그 순간 내 작은 방 안에 작은 블랙홀이 생기며, 그 안으로 모든 것이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친구도, 책도, 화장대도, 옷장도, 신발도, 싱크대도, 벽도.

 

* 다음 초콜릿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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