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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16] 떡볶이(김민정)

2017. 1. 29. 17:45

노네임포럼 T: TOPIC/김민정

 

 

떡볶이

* 지난 편인 초콜릿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SNS에서 건진 소득은 크지 않았다. 아니, 전무했다고 보는 게 낫겠다. 그간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마치 부모에게 칭찬받길 바라는 아이의 심정으로 샅샅이 살폈지만 올라온 사진은 단 한 장뿐이었다. 한 달 전에 업로드 된 떡볶이 사진, 그리고 한 문장의 글.

떡볶이 먹고 싶다. 같이.’

사진 속에 있는 건 평범한 떡볶이였다. 너무 평범해서 지루할 정도였다.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장식된 공간에서 부루스타에 냄비를 올려 조글조글 졸여 먹는, 소위 요즘 유행하는 즉석 떡볶이도 아니었다. 얼룩덜룩한 멜라민 그릇에 무심히 퍼놓은 떡볶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1인분에 2500원쯤 하는 떡볶이, 종이컵에 오뎅 국물을 담아 잘 넘어가지 않는 떡을 국물로 억지로 삼켜 넣어야 하는 그 떡볶이. 구깃구깃 주머니에 고이 접어놓은 돈을 아줌마에게 건네며 조금만 더 주세요, 조금만 더요. 간절한 눈길로 기다리다가 추운 손을 호호 불며 먹던 가난하고도 어린 시절의 그 음식. 이것은 그녀답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보고 학습해 온 불륜녀라는 역할과는 다른 모습이다. 왜 불륜녀다운 사진을 올려놓지 않지? 나는 수많은 남자들과 시시덕거리며 찍은 사진이나, 야한 옷을 입고 자극적인 색의 립스틱을 바르고, 명품 옷과 가방으로 SNS를 장식한 모습을 기대했더랬다. 각종 드라마나 소설로 학습한 불륜녀의 이미지는 적어도 그랬다. 무언가 신기하고 자극적인 것을 올려놨을 것이라 기대했던 내 마음은 금세 실망으로 범벅이 되었다.

친구에게 이야기해봤자 복잡한 마음에 혼선을 줄 것이 분명했으므로 나는 잠자코 있기로 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새로운 것이 업로드 되지는 않을까, 매일 잠들기 전 규칙적으로 그녀의 SNS에 들어가곤 했다. 샤워를 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 그녀의 SNS를 관찰하다 잠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새로운 것은 올라오지 않았다. 매일 보이는 것은 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네모나고 작은 떡볶이 사진 한 장뿐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떡볶이 사진을 하나의 작품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세기에 내노라 했던 유명한 작가의 그림처럼, 아마추어가 대충 찍은 떡볶이 사진도 매일 바라보니 새로운 것이 보였다. 새빨간 양념장에 범벅이 된 떡은 너무 가늘지도 그렇다고 너무 굵지도 않은 적당한 굵기의 것이었고, 함께 버무려진 오뎅이나 대파의 양도 적절해보였다. 보면 볼수록 떡볶이는 꽤 맛있어 보였다. 나는 혀로 입술을 자꾸 핥다가, 그렇게 모여진 침을 꼴깍 삼키곤 했다. 나의 취향은 떡볶이에 김말이나 오징어, 못난이 등의 튀김과 순대까지 한데 버무려 먹는 것이다. 그렇게 먹으려면 자연스레 양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3~4명의 친구들과 동행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떡볶이는 정확히 1인분처럼 보였다. 혼자 길을 가다가 우연히 포장마차에 들어가 먹은 떡볶이 같았다. 그녀는 아마 독립심이 강한 사람일지도, 아니. 어쩌면 처절하게 외로운 사람일지도.

같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친구의 남편과 함께 먹고 싶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냥 단순히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먹고 싶다는 뜻일까. 그런데 왜 하필 떡볶이일까? 불륜녀들은 남자와 밥을 먹을 때 비싼 레스토랑에 가지 않나? 그래, 어쩌면.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의 연인들처럼 길가에서 떡볶이를 먹는 소박하면서도 일반적인 데이트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떡볶이는 레스토랑 사진보다도 위험한 것이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텅 빈 방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혼자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사진을 찍는 그녀의 모습이 두둥실 떠올랐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인데, 나는 그녀에게 이상한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딱딱한 핸드폰 액정 속의 떡볶이 사진을 한참동안 손으로 쓰다듬다,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  

-대리님, 푹 쉬시고 내일 뵈어요.

평일의 퇴근 시간. 회사를 나와 사람들과 헤어졌다. 과장의 승진을 축하하는 회식 자리가 있었지만 아프다는 핑계를 대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오늘은 왠지 혼자 있고 싶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원래 우울한 감정엔 이유가 없는 법이다. 어쩌면 생리기간이 가까워져 그런 걸지도.

부슬비가 내리고 난 뒤의 종로 거리는 유난히 스산했다. 거리를 이렇게 여유 있게 걸어본 것도 꽤 오랜만인 것 같았다. 퇴근 후 한 잔 걸치러 온 사람들로 술집 주변은 유난히 붐볐다. 그 순간 왜일까, 갑자기 떡볶이를 먹어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 회사 앞 작은 포장마차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단 한 번도 혼자 무언가를 먹으러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길거리 음식을 먹은 것은 대학교 때가 마지막이다. 깔끔 떠는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발걸음은 그 작은 포장마차로 향했고, 어느새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포장마차의 아줌마들은 어서 오라는 인사도 없이 묵묵히 순대를 썰고 있었다. 순대를 썰던 손으로 손님이 건넨 돈을 받고, 다시 잔돈을 센 뒤 그 손으로 순대를 썰었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것 같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떡볶이 1인분만 주세요. 아줌마가 순대를 썰던 손으로 그릇에 떡볶이를 담는 동안, 나는 멍하니 포장마차 안을 살폈다. 가만 보니 인기 있는 포장마차 같았다. 한적한 옆집과는 달리 유달리 사람들이 많았다. 낙원동에서 소주 한 잔 걸친 듯 보이는 할아버지들, 금요일을 맞아 놀러 나온 커플들, 그리고 종로 앞 어학원에서 공부하다 허기를 때우러 온 학생들까지.

-아니, 왜 먹다가 그냥 가? 하나 먹으면 700원이야, 두 개 먹으면 천원이고.

-체한 것 같아서요. 그냥 하나만 먹을게요.

혼자 서서 오뎅을 깨작이던 한 여자아이가 가방을 챙겨 포장마차 밖으로 나섰다. 유명 대학교의 로고가 적힌 점퍼를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어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여자아이가 나간 뒤 아줌마들은 조용히 수근대기 시작했다.

-글쎄, 얼마 전에는 어떤 기지배가 온거야.

-혼자서?

-. 혼자서 떡볶이를 먹다가 반도 못 먹고 남기더라고.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얼굴이 파리한게 이상해. 그래서 그랬지. , 너 혹시 임신한 것 아니니?

-어머, 임신?

-. 얼굴을 보아하니 그렇더라고. 물어보니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어. 그래서 내가 또 그랬지. , 너 얼른 병원 가봐라. 그랬더니 그냥 돈을 놓고 나가더라고.

-아이고. 진짜 임신했는갑네.

맛이 없었다. 떡볶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별로였다. 그녀의 SNS를 보며 궁금해하던 그 맛과는 매우 달랐다. 짜고, 맵고, 질기고, 지루하게 오래 씹어야 했다. 그녀가 갔던 떡볶이집이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억지로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 짜고 맵고 질기고 지루한 맛을 오래도록 씹으며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가 먹었던 떡볶이를 생각했고, 떡볶이를 먹는 그녀를 생각했다. 그리곤 그대로 포장마차를 나와, 매일 타는 파란색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입에 남은 텁텁하고 끈덕한 MSG의 맛은 쉽사리 지워지질 않았다. 마치 맛보아서는 안 될, 무언가를 먹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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