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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와 거지의 미스터리

 전성진

-미리 밝히면 이건 잡지사 에디터로 일할 때 저지른 가장 큰 실수인 동시에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사건이 터진 것은 20151월 말이었다. 2월호 마감이 끝나고 여유롭게 출판된 잡지를 확인하는 데 믿을 수 없는 걸 발견한 것이다. 로푸드(Raw food: 생식) 칼럼에서 로푸드 버거를 소개하는데 제목으로 크게 들어간 영문이 버거(Burger)가 아닌 베거(Beggar)로 들어가 있었다. 영어로 거지 혹은 구걸하는 사람을 뜻하는 베거(Beggar)가 칼럼에 대문짝만하게 들어간 것이다. 베거는 버거와 비슷하지도 않은데! 머리가 띵하고 울림과 동시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눈을 씻고 봐도 분명히 내가 쓴 칼럼이었다. ‘본문에는 분명 버거라고 적혀 있는데 어떻게 제목이 이렇게 들어갈 수 있지?’, ‘누가 장난친 건가?’, ‘내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샀나?’ 수백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회사의 분리수거함이었다. 마감 기간에 봤던 대지(디자인 된 원고를 인쇄해 뽑은 종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불과 며칠 전이 마감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대지에는 당연하게도 베거(Beggar)라고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이번엔 컴퓨터로 향했다. 초고를 찾기 위해서였다. 원고에는 버거도 베거도 적혀있지 않았다. 원래 제목에 영어를 넣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원고에 포함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영어 제목이 넣은 것은 한 번 디자인이 나온 뒤의 일이었다. 이거봐! 베거라고 적은 기억이 없다고!

 

이제 문제는 어디서 틀어졌느냐는 것이다. 디자인이 나오는 과정? 교정이 넘어가는 과정? 내가 중간에 원고를 추가했던가? 아무리 그래도 누가 남의 칼럼에 버거를 베거라고 넣겠어.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겠다. 그렇지. 역시 내 실수가 맞는 것 같아. 근데 정말 기억에 없는 걸. 대체 소제목을 언제 처음 넣었더라.

 

증발된 기억을 되살리려 가진 애를 썼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그 날 고개를 푹 숙인 채 편집장님에게 가서 실수에 대해 고해성사 했다. 편집장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셨다. 아니 웃으시긴 했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쓴웃음이었다. 짧게 혼이 났다.

 

근데 너나 나나 교정언니(우리 회사에선 교정 봐주시는 분을 이렇게 부른다)나 어쩜 한 명도 그걸 못 잡아냈을까?”

 

잠깐을 못 참고 그러니까요!”라고 맞장구를 쳤다가 꿀밤을 맞았다.

 

심란해하며 자리에 돌아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칼럼에 쓰일 음식을 준비해주셨던 로푸드 전문가 에너지키친의 경미니 대표께 비보를 알려야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경미니 대표는 유창한 영어실력의 소유자였다. 그녀가 베거를 본다면 얼마나 어이없어 할까. 한참을 우물쭈물 하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경미니 대표는 호탕하게 하하하하 웃고는 괜찮다며 되레 위로 건넸다.

 

모든 뒷수습을 하고 나서야 여러 감정이 몰려왔다. 조금만 잘 볼걸, 좀 더 검토할 걸 하는 의미 없는 후회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컸던 건 실수를 하자마자 어디서 일이 틀어졌는지부터 찾았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실수가 설령 내게서 시작된 게 아니라고 해도 마지막에 발견하지 못한 건 결국 내 책임인데 그걸 어떻게든 덜어보려고 안달했다는 게 민망했다. 꼭 나를 뺀 모두가 어른인 것 같았다.

 

 

지금도 종종 베거의 출처를 생각한다. 자려고 누우면 어떻게 된 일일까 하고 이미 반복한 생각을 또 하기도 한다. 암만 고민 해봐도 거지와 햄버거의 미스터리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