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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8]샌드위치(김민정)

2016. 9. 3. 22:48

노네임포럼 T: TOPIC/김민정

샌드위치

 

그런데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다. ,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좀 이상한 사람인데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나는 그럼요, 괜찮아요 하곤 그를 데리고 호텔 바에서 나왔다. 그의 정상유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나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인지할 여유조차 없었다. 남자에게 말을 걸다니. 심지어 함께 나가자고 하다니. 헌팅이라니. 나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좀 미친 것 아닌가? 손에 땀이 나고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다. 딩동,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고, 그는 나를 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훈훈한 남자였다. 나이는 30때 초반쯤 됐을까? 키는 175cm, 몸무게는 아마 60kg 초반대. 적당히 슬림한 몸매에 웃을 때 자연스레 생기는 눈가 주름이 멋졌다. 그 와중에도 스스로의 선택에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로비로 내려와 호텔 정문을 나섰다. 차다 못해 시린 바람이 불어 닥쳤다. 어제만 해도 여름이었는데, 과거는 벌써 잊은 듯 이율배반적인 날씨였다. 조금 걸을까요?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일반적인 데이트의 경우, 주도권은 대개 남자가 잡는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83번째 소개팅남을 떠나보낸 뒤 내 의지로 선택한 남자니까. 마치 손님을 초대한 호스트처럼 그를 접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데이트마다 항상 수동적이었던 내가, 그와 정반대의 역할에 서는 것은 참으로 묘했다. 나는 쭈뼛쭈뼛 눈치를 보다 을지로에서 종각 쪽으로 걸음을 뗐다. 그동안 그가 어색함을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양의 질문을 짰다. 그리고 성급히 질문을 던졌다. 몇 가지 질문으로 파악한 그의 신상은 예상대로였다. K34세로 현재 대학원에서 문예창작 박사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자신이 쓰는 소설의 취재 차, 마음먹고 값비싼 호텔 바에 오게 되었다고. 그러다 정말 재밌게도 나를 만나게 되었다고.

-그런데그쪽은 왜 이상한 남자예요?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 신호등이 바뀌기 기다리며 그에게 물었다. 처음 만난 여자에게 하는 소개 치고는,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이었기에 계속 신경이 쓰였더랬다.

-왜냐면요, 제가 총 8명의 여자친구가 있어요.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도로는 비교적 한산했다. 자전거 탄 노인이 도로를 지나쳤을 뿐, 오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곧이어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었고, 우리는 말없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8명이라니. 무슨 뜻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총 8명의 여자를 사겨봤다는 뜻일까? 그런거라면 말이 된다. 평균적으로 한 명당 1~2년의 연애를 했다 치면, 30대에 근접한 남자가 경험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이성의 수치다. 하지만 있었어요또는 사겨봤어요도 아니고 있어요라는 현재형 어미라니.

복잡한 내 표정을 눈치 챘는지, 그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폴리아모리스트(Polyamorist)라고 소개하며, 일부일처제와는 달리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연애를 추구한다고 했다. 상대방의 동의하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 바람을 피운다거나 스와핑을 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슬쩍 보더니, 역시 이상하죠? 하며 싱긋 웃었다.

그는 출출하다고 투덜대더니, 이렇게 된 것 간단히 한 잔 하자며 허름한 호프집을 가리켰다. 시계를 보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르는 남자와, 심지어 처음 보는 남자와 술이라니. 괜찮을까 싶었지만 이상하게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묘한 안도감을 주는 남자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를 따라 호프집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요?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데요. 혹시,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이 덜해서 그런 건 아닌가요? 일종의 집중력 부족 같은.

맥주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주문한 뒤,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일부일처제가 당연한 한국 사회에서 33년간 살아온 나에게, 그는 이상하기보단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게 바로 모노가미(Monogamy). ,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죠. .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상대방에게 자신의 기대치를 요구하죠. 친절한, 돈 많은, 몸매가 좋은. 그런 사람이 되어 달라고요. 당연히 상대방은 그 모든 욕구를 채워줄 수 없으니, 둘 사이에는 수많은 갈등이 생겨나게 되겠죠. 그런데 그 욕구를 꼭 한 사람에게 채울 필요가 있을까요? 상대방에게 없는 부분을 가진, 다른 사람과 또 만나면 되는 거잖아요.

-네에? 그런게 가능할 리.

그때 웨이터가 주문한 샌드위치와 치킨, 맥주를 가져왔고, 우리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그는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베어 물더니, 입 안 가득한 음식을 삼키지도 않고 말했다.

-그어니까, 으음. 바러 이 샌드이치 가튼 거에여.

-?

-하하. 죄송해요. 바로, 이 샌드위치 같은 거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재료를 편집해서 하나로 만들었을 때 훌륭한 맛이 나는, 이 샌드위치처럼요. 제 연애는 그런 식이예요. 제가 좋아하는 다양한 면모를 가진 여자들을 모아, 하나의 완벽한 연애를 추구하는거죠.

여자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그의 말투에 약간 기분이 언짢아졌지만, 그의 연애 방식에 동의하는 여자가 8명이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나는 일단 잠자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드처럼,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 올리브->샌드위치->햄버거(다음 주제)편으로 이어지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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