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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7] 빙수(김민정)

2016. 8. 22. 02:29

노네임포럼 T: TOPIC/김민정

 

빙수

 

나는 소설을 쓴다. 유명 명문대의 문예창작학과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IMF때 사업에 실패한 아빠는 자취를 감췄고, 엄마는 빚에 쫓겨 술과 남자를 달고 살았으니까. 삶을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글은 나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소설을 공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력이라고 본다. 그러한 면에서, 내가 일하는 가게는 꽤 훌륭한 장소다. 시급도 훌륭한 편이고 주인도 좋아 나는 벌써 3년 째 같은 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로변에서 꽤 떨어진 시카고라는 이름의 카페인데, 주인의 수단이 좋아 꽤 손님도 많다. 식사 뿐 아니라 커피, , 디저트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백 가지가 넘는 메뉴를 팔기에 어떤 사람들이든,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싼 가격에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맛이지만, 대부분 모두 만족하고 간다.

그리고 이렇게 스미듯 익숙한 카페엔, 어디나 그렇든 단골들이 있다. 아침마다 들러 오믈렛을 먹는 중년의 회사원, 오후 한가한 시간이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피자가게 아르바이트생 청년 같은. 나는 카페에서 마주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그리고 요즘 내가 가장 흥미를 갖고 있는 단골은, 다름아닌 15분의 남자다.

그는 매일 밤 1015, 정갈하게 머리를 빗고 정장을 입은 말끔한 차림새로 가게에 들어온다. 손에는 언제나 서류 가방이 들려있다. 빙수 하나 주세요, 시럽은요? 초코로 뿌려주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가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전부다. 그는 언제나 가게 통로 오른쪽 끝에 위치한 작은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곤 천천히 빙수를 먹는다. 조금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은 빙수 그릇을 반납하곤, 다시 가게를 나가는 시간이 1030. 그래서 나는 그를 15분의 남자라고 부른다.

그가 가게에 오기 시작한 초여름부터, 나는 거의 매일 이 이상한 남자를 관찰했다. 그는 마치 가게 같은 남자다. 가게란 것이 그렇다. 딱히 혼내는 사람도 없는데, 매일 같은 시간에 열어 같은 시간에 문을 닫는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약속을 꾸준히 지키는, 한결 같음이 필요하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심지어 옷과 스타일도 한결 같았다. 그가 성실한 사람이라는 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가 오는 1015분이 기다려졌고, 그가 올 땐 시계를 보지 않아도 1015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했다. 1015분이 넘었는데도 그가 오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가게는 손님도 뜸했다. 카페의 빈 공간에 울리는 시계 소리가 적막감을 더했다. 나는 갑자기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1분 단위로 확인하던 시계를, 30, 10초 단위로 자꾸만 봤다. 밖엔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소나기였다. 사람들은 뜻밖의 비에 우왕좌왕하며 뛰어 다녔다. 1025. 갑자기 비에 젖은 그가 가게에 들어섰다. 나는 조그맣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멋쩍게 서서 옷의 물기를 털어내더니, 천천히 카운터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빙수 하나 주세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나는 시럽은요라는 매뉴얼 대신 다른 말을 내뱉는다. 붉게 달아오른 그의 한쪽 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조용히, 시럽은 초코로……하더니, 고개를 떨궜다. 그의 시선을 따라 옷에 스민 빗방울이 바닥으로 뚝, 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봐서는 안 될,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엿본듯한 기분이 들어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정성스레 빙수를 만들었다. 플라스틱 컵에 얼음을 갈아 담고, 연유와 초코시럽, 싸구려 젤리를 얹었다. 평소와 다를바 없는 레시피였지만, 적어도 그가 맛있게 먹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빙수를 받아 들곤, 언제나 처럼 그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천천히 빙수를 먹었다. 나는 힐끔 힐끔, 그런 그의 모습을 몰래 관찰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인 것 같았지만, 창 밖을 바라보는 시선이 묘하게 달랐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공허한 표정이었다. 그는 빙수를 뜨던 손길을 멈추곤,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빙수 그릇을 가져왔다. 그릇은 평소와 달리 반 이상 빙수가 남겨져 있었다. 그리곤 지갑을 꺼내 빙수값을 계산했다.

-, . 빙수 맛이 별로셨나요?

-아니요, 맛있습니다. , 빙수 좋아해요. 하지만 오늘은 조금 입맛이 없네요.

-네에.

그는 씁쓸하게 웃은 뒤, 가게를 나섰다. 나는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 15분의 남자를 생각했다. 그리곤 글을 적어 내려갔다. 소설 속의 그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했다. 상대방 여자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결혼한 케이스로, 둘의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불행했다. 그러던 차, 그는 영업 때문에 들렀던 술집의 여종업원과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는 워낙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었다. 현실을 뒤엎을 용기는 없었다. 결국 현재의 부인에게 되돌아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습관처럼 빙수를 먹기 시작했다. 빙수를 먹는 순간만큼은 시원하고 달콤해,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쓰고, 너무 뻔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문득 계산할 때 보았던, 그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굵은 반지를 생각했다. 커플링이라기엔 조금 무거운, 다이아몬드가 깊게 박힌 반지. 소설 같은 이야기는 현실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그것을 소설로 적었을 땐 오히려 삼류처럼 느껴진다. 정말, 너무 이상하고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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