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TOPIC:7] 빙수기(박지연)

2016. 8. 24. 09:49

노네임포럼 T: TOPIC/박지연





이제는 클래식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구식 빙수기는 철제 조형물이었다. 두드려 만든 몸체에 자동차 핸들만한 손잡이가 달려 그것을 물레처럼 돌리면 칼날 위에서 얼음이 회전하며 깎여나가는 방식이었다. 가정용으로는 너무 컸기 때문에 빙수는 빙수기를 뿌듯하게 실외에 올려놓은 포장마차나 식당에서 사먹을 수 있는 외식이었다. 철제 빙수기는 여름이면 마치 대형 파마산 치즈를 눈에 보이는 곳에 올려놓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처럼 묵직한 얼음덩이를 얹은 채로 식당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당당히 올려져 있었다. 그 위에서 하루 종일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얼음 덩어리는 그것만으로도 여름을 환기시켰다. 사람들은 이 푸른색 빙수기가 눈에 띄면 홀린듯이 빙수를 사 먹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플라스틱으로 작은 몸체를 만들고 전기 모터를 단 가정용 빙수기가 유행을 했다. 얼음을 회전시켜 칼날에 분쇄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대형 빙수기를 그대로 흉내내 작고 가볍게 만든 것이었다. 조금 지나서는 얼음을 가는 방식이 아닌 기계 내부에서 저온으로 결정화 시키는 '눈꽃빙수'기계가 등장했다. 그로인해 빙수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실내용 디저트가 되었다. 빙수기는 그렇게 식당의 여름 메뉴 개편을 알리는 시각적 오브제로부터 은퇴했다. 구식 빙수기는 이제 재래시장에서도 보기 힘들어졌는데, 힘겹게 물레를 손으로 돌리는 대신 모터가 얼음을 갈아주는 소형 빙수기가 식당의 기본 가전 제품으로써 거의 보급되어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오랫동안 튼튼하게 써야 했던 시절에 만든 철제 빙수기는 시대의 유행보다도 수명이 길었는데, 그래서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뜻밖에도 빙수기는 빈티지 인테리어 소품으로 팔리고 있었다. 어쩐지 그 시대에 제작된 철제 제품들은 기능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화려한 외관을 하고 있었는데, 얼음 빙(氷) 자를 모티브로 한 원형 패턴, 전통적인 소나무 문양, 자두와 수박 등 여름 과일을 표현한 세공이 전, 측면에 들어가지 않은 제품이 없었다. 다소 조잡한 스프레이 페인팅을 벗기면 그 철제 조각품은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실내 소품이 된다. 어째서 빙수기에 그렇게 화려한 외관이 필요했을까, 아마도 이 무거운 제품에게는 식당의 시각적 환기를 담당하는 오브제라는 책임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빙수기는 플라스틱이 넘쳐나는 시대에 철기를 소유한다는 부의 감각으로 실내를 차지하고 있다. 구식 빙수기가 완벽하게 가치를 잃는 날은 아직도 멀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