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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8, SBS를 통해 과일주스 전문점 쥬씨의 1L 사이즈 주스가 실제로는 1L에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SBS의 검증결과 쥬씨 1L 생과일주스의 용량은 800ML 내외. 쥬씨 본사 역시 이를 인정하고 ‘1L’에서 ‘XL’로 표기를 바꿨으며 사과의 의미로 ‘1000원 사과주스를 출시했다. 사건 이후에도 쥬씨는 지점 수 500개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고 떼루와’, ‘쥬스식스’, ‘주스탐’, ‘쥬스킹’, ‘곰브라더스등 어마어마하게 많은 종류의 카피브랜드를 탄생시켰다.

 

1L 주스의 용량 논란에 대한 여론은 다양했다. 고객을 속였다는 배신감에 치를 떠는 이도 있었고, 속인 것은 잘못 됐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주스를 제공하니 앞으로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사건 이후에도 매장이 성황인 것을 보면 후자의 경우가 많은 듯싶다. 몇몇 매장에 용량 논란이 매출 영향을 주었냐고 물어본 결과 모두 아니라고 대답한 걸 보면 아마 전자 역시 쉽게 마음을 푼 듯하다. 금방 사태가 수습된 건 본사의 빠른 대처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주스 가격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배신감에 생과일주스를 포기하기엔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용량 논란을 보며 그래도 800ml면 거저 주는 거지라고 자위하며 주스를 사마셨다. 좀 더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용량 논란 이전부터 저가 과일주스가 불편했다. 하지만 꿋꿋하게 마셨다. 사과 1개 반 이상이 들어간 사과 주스 800ml2800원에 먹을 수 있다는 유혹은 너무나 달콤했고 나는 유혹이 올 때마다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넘어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깔려 있던 옅은 불편함이 선명해졌다. 외면하려고 해도 별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나는 저가 생과일주스의 저렴한 가격이 불편하다.

 

저가 생과일주스 전문점이 말하는 낮은 가격의 비결은 농장과 과일을 직거래하거나 시장 경매를 통해 구입해 원가를 낮췄다는 것이다. 재료 구입비용을 줄여 낮은 가격으로 많은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 박리다매의 원리를 적용시킨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시스템이다. 프랜차이즈 사업 설명회에서 예비점주들을 홀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음식점에서 일 해본 사람은 안다. 재료비를 아껴서 이윤을 남긴다는 게 얼마나 동화 같은 이야기인지를. 완벽한 듯 보이는 이 시스템엔 저렴한 가격이 나올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퍼즐이 빠져있다.

 

빠진 퍼즐 조각을 찾아보자. 고정비인 월세, 브랜드 로열티, 카드수수료는 줄일 수 없다. 조정 가능한 건 전기사용료, 유지·보수비, 인건비, 재료비 정도다. 이 중에 비용을 줄일 때 재료비 이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항목은 하나뿐이다. 그렇다. 답은 인건비.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각종 생과일주스 전문점의 시급을 검색해봤다. 대략 눈으로 확인해 봤을 때 10곳 중 2-3곳이 최저임금으로 구직을 하고 있었고 대부분이 6500원이 되지 않는 시급을 명시해뒀다. 매일 아침 지나치다 봤던 매장도 올라와 있었는데 볼 때마다 고객이 6~7명은 줄서서 기다리는 곳이었으나 시급은 6100원이었다. 매장 안에서 본 직원 수의 최대는 4명이었고 그들은 숨 돌릴 시간도 없이 주스를 만들었다.

 

물론 인건비 문제는 고민해볼 여지가 많다. 첫 번째로 인건비는 점주가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만 준다면 위법이 아니다. 노동 강도와 상관없이 합법적으로 고용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초기 투자비가 대거 들어간 상태에서 사업장이 인건비를 넉넉하게 책정하는 건 쉽지 않다. 기껏해야 가장 비싼 주스가 3800원인 사업장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최소 인원과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뽑아내는 것이다. 심지어 생과일주스 전문점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생겨나는 추세를 생각하면 마냥 인건비를 아끼려는 점주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굳이 점주의 잘못을 따지자면 인건비를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가게를 개업한 것 정도 되겠다.

 

이런 여지가 있음에도 생과일주스 전문점이 불편한 이유는 시간 당 6030원을 벌기 위해 수십 잔의 과일주스를 뽑아내는 노동자(주로 20대인)를 외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내가 20대기 때문에 혹은 얼마 전까지 주방에서 시급을 받고 일했기 때문에 지금 하는 얘기가 게으른 젊은이의 투정으로 들린다면 알바몬과 알바천국에서 조사한 대학생 월 평균 생활비를 보자. 4년 간 두 사이트가 실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주거비를 제외한 대학생 월평균 생활비는 30만원 후반에서 40만원 초반 선이다. 현재 최저임금으로 계산했을 때 약 65시간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5일로 쳤을 때 하루에 3~4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투자해야 평균 생활비를 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학생의 실정이 이런데 취업준비생은 어떨까. 생활비에서 학원비와 시험응시료, 면접용 사진 촬영비가 추가로 나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진다.

 

그럼 원흉은 무엇일까. 우선은 치솟는 물가에 비해 턱없이 적은 최저임금 때문일 것이다.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이니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 좀 더 구체적인 문제를 찾아보자. 나는 문제의 중심에 생과일주스 전문점들의 본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박리다매의 장점을 강조하며 예비점주를 홀리고 초기 투자비로 사업을 더욱 확장한다. 가맹점을 내는 것에 제한도 거의 없다.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개업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몸집 불리기 식으로 지점이 늘어난다. 시간이 갈수록 본사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점주는 이익을 내기 어렵고, 노동자는 강한 노동 강도에 비해 적은 인건비를 받는다.

 

악순환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정년퇴직을 앞둔 중년은 자식과 본인의 노후를 위해 저축한 돈으로 남들 다 한다는 주스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 들지만 녹녹치 않은 현실에 자식 또래의 아르바이트 생의 시급을 깎는다. 시급 6030원을 받으며 수십 개의 주스를 만든 20대는 얇은 지갑에 저렴한 먹거리를 찾는다. 그들은 퇴근 후 또래가 6030원을 받고 만든 또 다른 저가의 음식을 먹으며 오늘도 돈을 아꼈다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또 다른 중년은 그런 20대들을 보고 저렴한 음식을 만드는 새로운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든다.

 

이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좀 더 진지하고 깊고 구체적으로 해야 할 얘기다. 2주 후 올라올 2편에는 점주가 되기 전 고려해야할 것이란 제목으로 보다 구체적인 수치와 비용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글과 그림: 전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