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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없어서 못 먹지만, 어릴 적에는 콩국수가 비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소면은 좋아했기 때문에 콩국수가 나올 때면 왜 따뜻한 멸치국수를 먹지 않고 허여멀건 한 데다 차가운 콩국물을 마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온 가족을 위해 콩국수를 만든 다음 내 몫으로 덜어낸 소면으로 간장국수를 만들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 그래도 많은 부엌일을 두 배로 늘리고 있었던 셈이다. 


여하튼, 아동용으로 대활약하는 간장국수는 아주 간단한 레시피다. 간장과 설탕을 2:1로 섞은 다음 참깨와 참기름을 약간 더하면 끝! 소면을 삶아서 차갑게 식힌 다음 물기를 제거해서 섞으면 된다. 물을 끓이고, 소면을 후르륵 삶는 동안 깊은 그릇에 간장 설탕 양념을 만들고, 삶은 소면을 체에 밭쳐서 흐르는 물에 차갑게 식힌 다음 물기를 제거해서 그릇에 붓고 섞는다. 설거지거리라고는 그릇 하나, 젓가락 한 쌍, 냄비에 체가 다다. 


들어가는 재료도, 설거지거리도 한 손에 꼽을 수 있으니 당연하게도 고시원에 살 때부터 간장국수를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고시원에는 사용하기 영 불편한 공동부엌이있고, 고시생은 돈이 없고, 시간은 많지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간장국수는 그럴 때 적당히 한 끼 때우기 참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괴혈병 오기 딱 좋은 식단이다. 토마토나 귤처럼 먹기 편한 과일 채소가 있었으니까 겨우겨우 넘겼던 게 아닐까. 젊었으니까 괜찮았던 걸지도 모른다. 어쩐지 가끔 라따뚜이만 해 먹으면 얼굴색이 밝아지더라. 전반적으로 비타민이 부족한 시기였다.


딱히 부엌이 불편하지 않은 지금도 왠지 짭짤달콤한 간장국수가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이제는 간장국수를 보면 순수한 탄수화물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맨밥에 간장만 쳐서 대충 한 끼 때우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왜 맨밥에 간장을 치면 치즈나 버터나 달걀이라도 더 넣어야 먹게 되는데 국수는 간장만으로도 먹을 수 있을까. 여하튼 조금이라도 영양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일말의 양심을 달래기 위해 간장국수 월남쌈이라는 변종 메뉴를 만들어냈다!


월남쌈은 라이스페이퍼에 온갖 재료를 마음대로 싸서 멋대로 먹을 수 있지만, 특히 쌀국수를 넣으면 식감도 부드럽고 부피를 적당히 늘려서 쌈이 통통하고 예뻐진다. 쌀국수 대신 간장국수를넣어서 월남쌈을 만들면 채소를 먹기도 좋고 후루룩 마실 때보다 깔끔하게 먹는 기분이 든다. 같이 넣는 채소는 향이 있거나 살짝 볶아서 익힌 것이 좋다. 볶은 애호박이나 데친 쑥갓, 고수를 주로 넣고, 아보카도나 다진 오이지도 어울린다. 모든 재료를 준비해 두었다가 국수가 붇기 전에 매우 매우 신속하게 작업해야 한다. 



간장국수 월남쌈


재료(1인분)

소면 70g, 진간장 1큰술, 설탕 1/2큰술, 참깨·참기름 약간씩, 라이스페이퍼 4장, 오이채·볶은 애호박·고수·쑥갓 등 좋아하는 채소


만드는 법

1 냄비에 물을 넉넉히 끓여서 소면을 넣는다. 붙지 않도록 젓가락으로 저은 다음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찬물을 1/2컵 붓고, 다시 끓어오르면 찬물을 1/2컵 붓는다. 다시 끓으면 체에 부어서 흐르는 찬물에 식힌다. 물기를 제거한다. 

2 소면을 삶는 사이에 그릇에 간장과 설탕, 참깨, 참기름을 넣어 잘 섞는다. 물기를 제거한 소면을 넣고 비빈다. 이대로 먹어도 상관없다. 

3 월남쌈을 만든다면 국수가 붇기 전에 아주 신속하게 작업한다.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담가서 부드럽게 만든 다음 아래 3분의 1 지점에 채소와 간장국수 약간을 가로로 올린다. 아랫부분을 들어 올려 접은 다음 편지봉투 모양을 만들듯이 양쪽을 들어 올려 접고, 위쪽으로 단단하게 말아서 여민다.



Writing&Drawing 정연주

Blog: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http://nonameprojectstor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