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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고 싶은 욕망, 흔한 딜레마, 필요한 포기

- 연남동 앙프랑뜨(L'EMPREINTE)

 

 

 

요리잡지에 처음 입사했을때 나이가 25살이었다.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잡은 운 좋은 케이스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유독 학생티를 벗지 못했던 나에겐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았다. 첫 출근 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우연찮게 오XX선배와 단 둘이 긴 시간 택시를 타게된 것이다. 퇴근 시간에 걸려 옴짝달싹도 못하는 택시 안은 면접장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선배의 신상파악용 질문세례를 부지런히 선방하던 중 레스토랑 좀 다니니?”란 말에 결국 말문이 막혀버렸다. 패밀리 레스토랑 이름만 중얼거리다 얼굴이 시뻘게 져서 결국 많이 다녀보지 못했다고 실토해버렸다. 선배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숨막히는 택시에서 벗어난 나는 집에 와서 가로수길 유명 레스토랑을 인터넷에 검색해 목록을 만든 후 한동안 달달 외우고 다녔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몇 개월 전까지 대학생이었던 경기도민 25살 신입기자가 음식점을 모르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난 레스토랑 보다 주방일이 전공인 입사새내기였다고(흥)! 지금이야 선배와 친해져 비슷한 상황이 되면 저 돈 없는 거 모르세요? 사주면서 얘기하세요.’라고 장난투로 따박따박 대들지만 말이다. 대드는 말이어도 생각해보면 맞은 얘기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음식은 식문화이기 이전에 생계수단이다. 그때보단 아니지만 28살이 된 지금의 나 역시 다양한 식문화를 즐기기엔 주머니 사정이 야박하다. 레스토랑 행사나 업무의뢰가 아니면 객단가 5만 원 이상 되는 식사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파인다이닝은 직접 인터뷰를 하거나 다른 기사 혹은 블로그를 검색해 정보를 얻는 식이다.

 

 

물론 파인다이닝에서 좌절한 욕구를 채우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파인다이닝의 요리를 표방하면서도 보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저렴하게 음식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필운동 칼질의 재발견(이후 오더너리 티로 리뉴얼 됐으나 현재는 없어진 상태)’이나 일본에서 넘어온 이태원의 이탈리안 프렌치 레스토랑 오레노 같은 레스토랑을 꼽을 수 있다. 두 곳 모두 가장 저렴한 메인디시의 가격이 만원 대(오레노는 심지어 만원 미만 메뉴도 있다)였다. 닿을 수 없는 저 너머 파인다이닝을 바라보며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나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곳이었다. 이런 류의 레스토랑이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방문해 접하기 힘든 요리를 사비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은 물론이며 가성비’라는 절대적인 행복을 마음껏 누려왔다.

 

 

 

 

지난 4, 연남동에 생긴 앙프랑뜨(L'EMPREINTE)’ 역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프랑스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프랑스인 셰프와 한불통역사인 한국인 아내, 셰프의 친구인 프랑스인 홀매니저가 합심해 앙프랑뜨를 이끈다. 편안한 분위기의 비스트로이자 프랑스 가정식 가까운 디시를 내는 곳이다. 메뉴판에 양고기 스페셜이 따로 있는 걸 보면 셰프는 양고기 요리에 꽤 애착이 있는 것 같다. 홈메이드 케이크를 연상시키는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디저트 역시 셰프가 만든다.

 

 

앙프랑뜨를 총 두 번 방문했는데 한 번은 5월 말이었고 다른 한 번은 6월 초였다. 2주 정도 간격을 두고 방문했는데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소금간이나 재료의 향의 정도가 달랐다. 익히는 방식이나 올라간 부재료도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2주 만에 앙프랑뜨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며 느낀 것을 추려 말하자면 먹이고 싶은 욕망’, ‘흔한 딜레마’, ‘필요한 포기라고 할 수 있겠다. 우연찮게도 앞서 방문했던 '가성비' 좋은 레스토랑에서 느꼈던 부분과 절묘하게 일치했다.

 

 

 

어니언 잼과 무화과 빵을 곁들인 푸아그라 토르숑

 

 

먹이고 싶은 욕망’은 애초에 레스토랑을 차린 원동력에 대한 얘기다. 최적의 환경에서 최상의 디시를 내는데 집중하는 파인다이닝과는 다르게 객단가를 최대한 낮춘 레스토랑의 주 목적은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판매하는 것이다. 프랑스 요리는 특히 이런 욕망을 갖기 쉬운 분야다. 세계 최고의 미식문화를 자랑하는 나라의 요리지만 막상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에게는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프랑스 요리의 아름다움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끼는 전공자 혹은 종사가가 적지 않다.

 

 

앙프랑뜨의 메뉴판을 보면 이런 욕망을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프랑스 요리에서 대표적인 메뉴인 에스까르고, 푸아그라, 각종 와인 소스를 이용한 고기요리, 크렘브륄레, 타르트타탱 등은 물론이고 각종 조리법으로 요리한 양고기를 다룬다. 전통적인 메뉴부터 양식 조리법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양고기의 다양한 맛까지 모두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엿보인다. 앞서 말한 음식의 가격은 1만 원에서 2만 원 사이(디저트는 7000원대)3만원이 넘는 메뉴는 양갈비살 요리 하나다.

 

 

버섯, 브리치즈, 빵가루가 어우러진 크림소스 에스까르고

 

 

먹이고 싶은 욕망은 고객 입장에서 고마운 욕망인 동시에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부작용을 가져온다. 내가 앙프랑뜨에서 맛본 에스카르고, 양 정강이 요리, 닭가슴살을 곁들인 귀리 리조또, 염소치즈 타르트, 양갈비살 요리의 부재료가 겹쳤다. 어린잎은 양갈비살 요리를 제외한 모든 메뉴에 사용됐고 잣과 껍질콩은 세 가지 메뉴에 올라갔다. 두 메뉴씩 공통되게 쓰인 건 핑크페퍼, 감자, 느타리버섯이 있었다.

 

겹치는 부재료들

 

 

부재료가 중복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우선 핑크페퍼나 잣 같은 맛과 향이 강한 가니쉬(어린잎 채소는 명백히 과용이다)는 아마 셰프 개인의 취향일리라 예상(셰프는 아니지만 홀에 물어봤을 때 긍정했다)된다. 보여주고 싶은 요리가 있는 만큼 자의식이 요리에 투영된 것이다. 사실 단점이라고 하긴 애매하다. 앙프랑뜨는 가정식 요리를 하는 곳이고 덕분에 마음껏 셰프의 취향을 반영해도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고객에게 미치는 영향은 고려해볼 부분이다.

 

 

두 번째 이유는 컨트롤 할 수 있는 재료의 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메뉴판에 있는 메뉴와 특선요리, 디저트까지 합치면 앙프랑뜨의 메뉴는 거의 25~30개에 달한다. 여기서 디저트와 특선요리를 뺀다고 해도 18개다. 심지어 양고기 스페셜의 경우 구이부터 찜, 소세지 심지어 라비올리까지 있다. 디시에 맞는 가니쉬나 사이드를 일일이 발주 넣어 프랩(손질)해서 사용하기엔 인력, 시간, 비용이 감당될 리가 없다. 적은 프랩으로 최대한 많은 메뉴에 사용할 수 있도록 재료를 손질해(특히 버섯이나 감자) 동선을 최소화하고 주재료에 정성을 쏟아야한다. 가격유지를 위해 필연적이나 이 부분 역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유지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객단가로 감당할 수 없는 메뉴의 수가 부재료 뿐만 아니라 주재료의 품질에 영향을 끼치는 건 피할 수 없다.

 

이미 귀리 리조또에 올라가는 닭가슴살은 주재료까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처음 방문했을 때 먹었던 닭가슴살과 다르게 두 번째 닭가슴살은 표면에 색이나지 않은 상태다.

 

 

 

두 번째 생각은 흔한 딜레마인데 생소한 음식을 대중화할 때 주로 생기는 딜레마다. 국내 태국 요리 레스토랑에서 향신료를 현지스타일 그대로 사용할지, 아니면 한국인 입맛에 맞게 조율할지로 고민하는 것이 비슷한 예다. 현지스타일로 만들면 향신료가 거북해서 못 먹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대중적으로 만들면 이건 태국음식이라고 할 수 없다는 피드백이 돌아온다. 오픈한지 얼마 안된 레스토랑에서 많이 애를 먹는 부분이다.

 

 

추측하건데 앙프랑뜨가 현재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현지스타일에 가깝게 충분히 간을 하고 향이 강한 재료(양고기, 염소치즈 등)의 맛을 충분히 살릴지, 아니면 낯선 향을 어려워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간을 줄이고 재료의 향을 최대한 잡을지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반증으로 처음보다 두 번째 방문에 메뉴 전체적으로 소금간이 심심했다. 몇몇 메뉴는 재료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수준까지 간이 떨어졌다. 특히 양갈비살 구이는 씹는 맛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재료의 향 역시 첫 번째 방문보다 두 번째 방문 때 확연하게 줄었는데 이게 약한 소금간과 맞물려 평면적인 맛이 돼버렸다. 양정강이 요리와 함께 가장 만족스러웠던 메뉴인 염소치즈 타르트는 맛있었지만 염소치즈 특유의 쿰쿰한 맛이 덜해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호불호의 영역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국내에서 양고기나 숙성치즈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옳은 판단인지는 분명 생각해봐야한다.

 

 

라벤더 잼을 곁들인 양갈비살과 알감자 구이

 

 

마지막으로 필요한 포기는 앙프랑뜨에 대한 개인적인 바람이자 오지랖이다. 앙프랑뜨가 가장 타협을 했으면 하는 부분은 부재료의 중복을 넘어 주재료까지 영향을 받게 하지 않기 위해 메뉴를 줄이는 것이다. 현재 앙프랑뜨의 메뉴는 보기에 좋은 구성이지만 인력, 시간을 최대치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약점이 있다. 약점보완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가격 조정이고 하나는 메뉴 축소다. 가격을 조정하는 것은 앙프랑뜨의 지향점(부담 없이 프랑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것)을 잃는 방향이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남겨두고 20여개에 달하는 메뉴를 우선 조정하는 것이 좋겠다. 메뉴 개수를 줄이는 것이 무리라면 프랩에 손이 많이 가는 메뉴(가령 라비올리나 소세지 같은)를 특선으로 돌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음식 맛의 딜레마 같은 경우는 앙프랑뜨를 방문할 주고객층의 입맛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봐야한다. 생소한 향을 두려워하는 게 한국인 입맛이라고들 하지만 앙프랑뜨를 방문할 고객층의 입맛도 그럴까? 최근 인기 많은 태국이나 인도 혹은 베트남 레스토랑들 중 보편적인 입맛과 타협해서 성공을 얻는 레스토랑이 얼마나 될까? 한국인의 보수적인 입맛의 실체에 적극적으로 고민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무 정 없게 말한 것 같지만 사실 가성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앙프랑뜨는 고맙고 오래 봤으면 하는 레스토랑이다. 프랑스 요리의 담장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나 고뇌 역시 메뉴 곳곳에서 느껴진다대체적으로 디저트의 퀄리티는 무난한 편이고 프랑스인 답게 식사를 끝낸 후에 커피와 케이크를 한없이 여유떨며 먹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레스토랑이 한가로울 때가 기준이다. 무엇보다 '앙프랑뜨'는 한 달 후 변화가 기대되는 레스토랑이다.

 

Writing, take pictures: 전성진

 

 

앙프랑뜨 (L'EMPREINTE)

오전 11~오후 11시, 월요일 휴무

주말 오후 3시~530분 주방 브레이크타임

마포구 동교로 244 거구빌딩 2(연남동 260-15)

02-3144-2501